끄라비 여행을 끝으로 앞으로의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과 마음이 정리되었다. 혼자 시간을 오랫동안 보내면서 어떤 것이 내 삶에 중요한지,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래서 조용히 혼자 보내는 시간도 참 중요한 것 같다.
이번 여행을 오기 전에 몇가지 다짐했던 것이 유투브 보지 않기 (차라리 책을 읽자는 생각으로 이북가져옴), 사진 찍기에 너무 열중하지 말기 (눈으로 담고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무리하지않고 조심히 다치지 않기 (오기 전만해도 무릎 아직 낫지 않았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 충분히 갖기가 있었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어지러운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고 생각의 중심을 나로 모으려고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뤄서 만족스럽게 여행을 마쳤다.
워낙 최근 긴 기간을 남자친구랑 영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혼자 다니기에 익숙하지 않았었다. 특히 서양권 국가에서 아시아로 넘어와서 느끼는 문화적, 정서적 차이가 너무 컸었다. 싱가폴에 너무 오랜만에 와서 달라진 모습(아마도 달라진 건 나인 것 같다만)과 아시아적인 특유의 배려없는 모습과 남 의식하는 문화가 와닿아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사실 모든 인프라가 너무 편리하고 깨끗했으며, 치안이 너무 좋고, 나도 아시안으로서 생김새도 비슷하고 가치관과 생각도 비슷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것 같아서 외국이지만 마음이 더 편했다. 그런 점에서 싱가폴이 생활하기에는 영국보다는 훨씬 편하고 좋다. 마음이 편해지니까 건강도 더 좋아지는 것 같았다. 이래서 삶의 질이 중요한 것 같다. 아무리 영국이 커리어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열려있고, 선진화된 시민의식이나 철저하게 법과 규칙을 잘 지켜내는 사람들, 가족 중심적인 문화가 정말 좋아보였다해도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몸담아온 곳은 아시아고, 뼛 속까지 아시아인이기 때문에 아시아 국가에서 지내는 것이 더 좋다. 싱가폴 공항에 도착했던 순간 “내가 왜 이렇게 좋은 걸 두고 힘든 곳에서 꾸역꾸역 해내려고 했을까? 뭘 얻기위해서 그렇게 영국에 남으려고 했던걸까?”하고 자각하면서 내 자신이 안쓰러움과 동시에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알게된 느낌이었다.
영국 취준을 끝내기로 결정했을 때의 심정은 착잡하고 혼란스러웠다. 여느 때처럼 공고를 살펴보고 있던 때 갑자기 “이 포지션이 되더라도 난 잘 할 자신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지원을 하는데 “회사에서 면접 연락이 안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허우적대는 기분이 들었다. 모두가 온 힘을 다해서 질주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만 뛸 수 있는 트랙이 주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큰 장벽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이대로 계속 가면 안되겠다는 직감이 들기 시작했다. 남자친구가 3차례 최종면접에서 연달아 탈락하는 일을 계기로 더더욱 이 생각이 강해졌던 것은 맞다. 나는 어쨌든 남자친구랑 결혼을 약속해서 앞으로 계속 살아야하겠는데, 금융권 취업을 해야하는 남자친구를 생각하니 영국에서는 어려울 것 같았다. 영국에서는 혼자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한국행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론을 내고서 영국에 있는 동안은 결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싱가폴 공항에 도착한 순간 영국에서의 도전은 끝이 났다. ”내가 있어야 할 곳, 영국은 아니었음을“
그렇다고 지금 영국에서 있었던 기간이 아깝거나 후회되지도 않는다. 많은 걸 깨달았기 때문에 앞으로 살아가는데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생각의 폭도 많이 넓어지고, 급한 성격이 좀 더 차분해지고, 남에 대한 관대함도 많이 늘어났다. 그리고 더더욱 영국 취준에 아쉬움이 남지 않아서 적어도 후회는 없다. 그리고 지금 나의 새로운 목표인 박사진학에 큰 역할을 했던 영국 취준 기간이었다. 다음주 월요일에 한국으로 돌아간다. 새로운 목표와 마음가짐으로 들어갈 수 있다. 경계하는 것은 이 마음이 사회적인 분위기와 정서로 흔들리는 것이다. 내 목표와 꿈, 바뀐 내 모습을 지켜갈 수 있는 단단한 자아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한국에 돌아가서는 새로운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다.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연구분야와 주제를 설정하고, 이력서와 연구계획서를 잘 써서 교수님께 컨택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해온 것과는 정말 많이 다른 길이라서 새로운 목표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일인지? 가능성이 있는건지?에 대한 많은 의문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의문점에 대한 해소가 되었고, 확신을 가지고 이제 지원을 위한 준비를 하려고 한다. 영국에서의 시간으로 나는 값진 경험을 해냈다.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평생 함께 할 동반자도 얻었다. 도전은 이래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목표했던 일 그 이상으로 새로운 도전을 통해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로 이어지고 많은 것을 얻는다.
지금까지 걸어온 나의 여정 특히 영국에서의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항상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더 맞는 커리어를 위해서 계속 고민했고, 움직였고, 비록 시간과 노력과 돈이 들어간다고해도 감안하고 그 과정 속에서 어려웠던 점들을 모두 헤쳐왔다. 나이가 들더라도 이런 성향은 변하지 않고 계속 변화를 추구해갈 것 같다. 다행히 남자친구도 비슷한 성향이라 큰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가치관이 부딪히는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그렇기를 바란다). 비록 지금까지의 나는 안타깝게도 (ㅠㅠ) 커리어적으로 큰 성과를 이룬 적이 없었고, 내가 원하던 회사나 조직에 속해본 경험도 없었고, 커리어적으로나 인생으로나 좋은 멘토를 만난 경험도 없었다. 결국 나는 운이 좋아서 얻은 커리어적인 기회가 없었지만, 그래서 이제 한번 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한국에서 박사로 이어간다면 내가 영국에서 석사를 한 보람도 있고, 원하는 분야에서 연구도 할 수 있고, 연구실에서 프로젝트 기회도 얻을 수 있고, 좋은 멘토와 동료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박사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토록 바라던 그 기회를 얻은 기분이 들 것 같다. 그 기회를 얻으려면 나도 역시 열심히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영국 취준 때의 노력만큼은 해야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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