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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노트 ✈️/싱가포르 한달살기

해외취업국가로 싱가폴 선택지를 놓을 수 있게 된 이유 3가지

by Hayley S 2024. 7. 6.

지난 7년간 영국, 한국, 싱가폴에 거주하면서 느낀 것은 어디든 어려움이 있고, 국가마다 장단점이 다르게 있어서 비교가 되기는 하지만, 결국은 비슷하다.

인생의 레벨만을 놓고 봤을 때는 영국이 제일 높다고 느낀다. 문화적 차이나 언어적 장벽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싱가폴은 이에 비해서 문화적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고, 나도 이들 집단에 자연스럽게 속할 수 있고, 생활에서 이질감이 스트레스를 받을만큼 크지 않다. 언어적 요소 역시 시티에서 많이 벗어난 외곽지역이거나 60대이상 분들이랑 대화하는게 아니라면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다. 영어가 공용어임에도 불구하고 싱가폴 발음이나 브로큰 영어를 쓰기도해서 나역시도 영어소통에 부담이 적다.

생활적인 인프라 면에서도 영국은 매우 힘들다. 일단 밤 8시가 되면 대부분의 상점들은 문을 닫고 (버밍엄 코벤트리 살았을 때) 치안이 안좋아진다. 산책도 혼자 나가기가 부담이 될 정도로 도로 치안이 안좋다. 차가 있다면 멀리 떨어진 큰 몰, 공원, 외곽도시 여행 등 자유로워지겠지만 사회초년생인 우리는 차를 살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먹거리도 요리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후진 인프라 때문에 상당히 힘들었고, 삶의 질이 고꾸라치듯 낮아졌다.

이에 비해 싱가폴은 외식물가도 합리적이고 (호커센터는 오히려 한국보다 훨씬 더 저렴) 모든 몰들도 늦게까지 영업하고 (토요일에도 10시까지 운영하고, 꽤 많은 카페나 슈퍼가 24시간 운영함), 밤 11시에 자철에서 내려서 버스를 탈 때도 사람이 많고, 안전했다. 밤에 혼자 걸어들어갈 때도 전혀 무서움이나 어려움이 없다.

그렇게 싱가폴이라는 옵션이, 해외에서 산다고 하면 좋은 국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도 역시 어려운 점이 많다. 그 중 하나는 룸렌트인 것 같다. 아직도 사회초년생인 나는 전체렌트를 할만큼 월급을 많이 받기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룸렌트라는 옵션을 생각해야하는데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다.

타운하우스라 좋아보이지만 룸렌트 세입자는 제일 후지고 작은 방을 갖게된다..


1) 룸렌트
빨래, 요리, 샤워시간 등 같이 사는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하고 집이 집처럼 안느껴진다. 거기다가 집주인이랑 같이 사는 경우에는 더 힘들어진다. 지금 내가 머무는 곳 집주인은 cctv를 동선마다 설치해서 감시를 하거나, 냉장고를 집주인네와 나누어서 아주 작고 후진 냉장고만 사용하게 하거나, 세탁기도 밖에 있는 통돌이 후진걸로 쓰라고 해놓고 자기는 그걸로 걸레를 빨고 있다던가, 갑자기 집주인의 사정으로 퇴실일을 1주일 앞당겨 나가달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거나, 방을 제외한 어떤 공간도 사용하지말라고 해서 눈치가 보이고, 침대는 딱딱한 스프링이 그대로 느껴지는 돌같고, 의자는 땀냄새 오물냄새에 절여져서 결국 바꿔달라고 해야했고, 모든 서랍장이나 책상은 어디 중고시장에서 가져온 것 처럼 오래되고 낡았다. 내 나이 서른, 20대에는 가능했을지언정 이제는 이런 곳에서 살기 싫다 절대로.

싱가폴 영화관에는 중국어 자막이 있다.


2) 중국문화
사실 이 곳에 정착해서 싱가폴이라는 국가를 설립한게 중국인이고, 아무리 말레이 인도 등 다른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산다해도 결국 중국인이 majority이다. 집 앞에 빨간색 복이라고 쓰인 등이 걸려있고, 많은 표지판에 중국어도 함께 적혀있다. 가끔 중국어가 안되면 주문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어서 놀랬다. 지금 머물고있는 Ang Mo Kio는 진짜 중국어만 하는 분들이 있어서 식당에서도 소통이 안되기도 했다.

가족끼리 만나서 식당에서 큰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대가족 식사를 하거나, 중국 명절을 똑같이 크게 보내거나, 중국 음식이 정말 많다. 그냥 또 하나의 중국이다. 중국인들의 특징이 외지인들을 그렇게 환영하거나 소속에 껴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나는 외지인이라는 것을 항상 깨닫게 해준다. 전 회사에서도 중국말로 서로 얘기할 때는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답답했다. 그들만의 소속감을 나는 함께 느낄 수 없었다.

어쩌면 코리안 포지션으로 여기를 다닐 수도 있었다.


3) 지원할 수 있는 포지션의 한계
내가 7년 전 처음 싱가폴에 왔을 때도 비자문제는 어려웠었다. 이 곳 워킹비자 종류는 ep sp wp 세가지가 있는데 대학 졸업 직후 세일즈로 일했던 나는 wp로 근무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경력도 3년있고, 석사학위도 있다. 못해도 sp로 시작하고 싶은데 비자 지원을 받기란 쉽지않다. 한국 커뮤니티 모임에 한번 갔었는데 ‘처음엔 sp로 시작해야한다, 세일즈쪽 매니저급 월급이 커미션 다 받아도 500만원정도다.’라면서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말들을 들으면서 자리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사실, 나는 더 이상 커리어만을 위해 커리어이외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포기할만큼 어리지가 않고, 에너지와 열정이 없다.

비자를 쉽게 받으려면 Korean speaking 포지션을 노려야하는데 이런 롤들은 대부분 세일즈 업무이다. 나는 세일즈팀에서 일하다가 전문성이 좀 더 있고 나와 맞을 것 같은 분석일이나 PM쪽 일을 원했다. 그래서 대학원을 갔었기 때문에 다시 세일즈로 돌아가는 일은 그간의 노력을 버리는 것만 같았고, 커리어 전환이라는 일을 또다시 하기엔 나이도 그렇고, 확실한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러한 이유로 세일즈 한국인 포지션에 지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디지게 맛없었던 말차라떼..


다시 돌아온 싱가폴은 나를 반겨주었다. 6년새 많이 변했지만, 그 모습이 새로웠고 많은 걸 깨닫게 해주었다. 싱가폴이라는 나라가 그리웠다기 보다는 6년 전의 자신감 넘치고 꿈 많던 내가 그리웠던 것이다.

여기도 여전히 CBD는 빛나고 화려하고 멋있었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보는 것 같아 아련하고 마음 한 구석이 시려와서 울컥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난 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더이상 내 마음 속에 존재하지 않는 지난 꿈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영국에서의 2년은 나 자신이 누구인지, 내가 뭘 잘하는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알게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미련이 발길을 싱가폴로 향하게 했지만, 내 행복과 방향은 이 곳에 없었다.

내가 앞으로 있을 방향과 행복은 내 사람들과 함께하는 곳에 있다. 어디가되었든 어려운 점들과 사람들에게 받는 스트레스는 어딜가나 존재한다. 하지만 내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면 어려운 점이 있어도 이겨낼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 나도 내가 이렇게 빨리 이런 결론을 낼줄은 몰랐는데 서른이 되어 벌써 이런 결론에 다다랐다.

어딜가나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함께 할 사람과 있는 곳이 행복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싱가폴 체류기간이었다. 여러모로 많은 깨달음과 배움이 있었던 이 곳에 감사함이 있다. 그래도 다시 돌아올 수도 있으니 항상 열린 결말로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