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3월 3일 목요일이다. 지금은 퇴사만을 앞두고 있고, 대학원 합격증도 받았다. 심적으로 편안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단 회사에서의 시간 제외. 회사 스트레스도 줄어들줄 알았지만 똑같음)
요즘은 그냥 퇴근하고 집에오면 녹초가 된 상태도 저녁을 먹으면서 넷플릭스 솔로지옥을 본다.
배부르면 또 졸리고 졸리면 누워서 유투브를 보다가 잠깐 잠이 든다. 그러다가 한 저녁 9시에 깨서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겠다 싶어서 링크드인을 들락날락하다가 내 이력서도 고쳐보고 석사 이후 커리어를 어떻게 나아갈지 탐색을 해본다.
다행히 일주일 중 화,목요일은 헬스 피티가 있는 날이라서 퇴근 후 집에 오지 않고 스벅에서 이것저것 하다가 운동을 간다. 피티쌤이랑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운동도 하다보면 몸이 개운해지고, 스트레스도 풀린다. 운동+멘탈관리를 위해 피티를 가는 것 같다. 작년 11월 즈음에 피티를 시작할 때는 정신과 대신 가는 거라고 생각하고 피티비용을 아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당시 내 멘탈은 산산조각이 나있었고 희망이 없었고 불어난 몸에 부정적인 생각들에 어두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회사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이었는데, 내 능력치가 여기에서 일하는 것 밖에 안되는 건지, 자격지심이 심한 팀원이 나를 지능적으로 괴롭힌다던지, 팀장은 의욕없고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고, 내 커리어는 그냥 시스템에 수량이나 입력하고 선적서류나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에 발전+성취감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기에 높았던 자존감은 절대 그야말로 바닥을 쳤다.
어쩌면 내가 나 자신을 이 구렁텅이에서 내버려두었다면 나는 정말 내 자신을 혐오했을지도 모른다. 회사는 나의 가능성과 능력치를 짓밟으려는 것처럼 느껴저서 애사심은 커녕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외국계 제조업체임에도 불구하고 연봉은 직종기준 하위였고, 내가 더 많은 포션과 영어구사력을 지니고 있어도 나이별로 승진하는 시스템이 거지같았다.
이 구렁텅이에서 나 자신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것은 단 두가지 였다고 생각했다.
첫번째, 해외대학원 합격해서 원하는 커리어에 가까워지기
나는 대학생 때부터 오랜기간동안 IT업계에서 일하고 싶었다. 사실 정말 막연하게 IT업계는 직원대우도 훨씬 좋고, 연봉도 높고, 오피스도 도심에 위치해있기 때문이었는데 사실은 그 보다도 더 큰 이유는 가장 빠르게 변하면서 가장 큰 혁신을 이룰 수 있는 업계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성향상 머물러있는 것은 못 견뎌한다. 이런 성향 덕분에 20대를 평범하게 보내진 않아서 경험치는 많지만, 단점은 정적이고 보수적이고 변화가 없는 조직에서 버티질 못한다. 나는 빠르게 변하고 발전이 뚜렷한 업계에서 일하기를 거의 염원해왔다. 그렇지만 20대 때는 기회가 없었고, 직장운이 정말 거지같이 없었다. 첫 직장, 두번째 직장 모두 기계쪽에서 일하다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IT업계와는 멀어져왔다.
경력없이 진입이 정말정말 어려운 IT업계이고, 나는 이미 경력을 기계쪽에서 3년 정도 쌓았기 때문에 어떤 전략없이는 IT쪽으로 커리어를 Pivoting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링크드인을 통해 글로벌 (대기업이던 중소던) IT회사 Sales Admin 포지션으로 많이 넣어봤지만, 딱 2군데 연락이 왔었고 한 인도계 IT기업은 면접일에 바람 맞추었다. 말 그대로 잠수를 탔다. 한 군데는 2차 면접에서 면접관인 사장님이 나는 IT경력이 없어서 어려울 것 같다고 직접적으로 말을 해주셨다. 내가 아무리 한국에서 IT업계에 운이 좋아 들어간다고 해도 백오피스일 Sales Admin이거나 세일즈 Entry 레벨인 Sales Representative Development 일텐데 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나도 전문성을 가진 포지션에서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경영 사안을 결정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예를 들면 Project Management 또는 Tech Consultant가 있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IT회사의 PM이나 분석업무 쪽으로는 이력서도 못 내밀 상황이다. 나는 IT전공도 아니고, IT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라서 거의 기적을 바래야할 정도의 확률이라고 느꼈다. 나는 한국보다 외국으로 가야만 나에게 더 많은 기회가 있을거라고 확신했다. 나는 싱가폴에서 일한 경험과 캐나다에서 만난 친구들의 케이스를 보면서 오히려 외국이 더 기회가 많다는 것을 체감했었다.
물론 싱가폴에서 워킹비자 받는 일이 쉽지 않다. 그렇지만 싱가폴에는 글로벌 APAC지사들 엄청 많고, 이 회사들은 외국인 채용을 한다. 코로나로 싱가폴도 내수 상황이 안좋아서 정치적으로 내국민 보호차원으로 비자법을 더 엄격하게 했다한들 다시 시장이 좋아지고 있고, 사람이 필요한데 기업은 비자를 지원해서라도 인재유치에 힘쓸 것이다. 오히려 외국에 와서 일하는 것이 그 사람의 적극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플러스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싱가폴은 대학이 NUS,SMU,NTU 이렇게 3개 메인 대학 + 영국대학분교로 이루어져 있어서 고용시장에는 학사 졸업생이 많지 않다. 또 그렇기에 나의 학사 졸업장이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한국 대학 순위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학벌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타국살이가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캐나다, 싱가폴에서 살면서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과 내 옆에 온전한 내 편이 되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더 외롭게 만들었고, 아침에 눈을 뜨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여기에 있는지 회의감이 수없이 들었다.
그렇지만 싱가폴에서 출퇴근하는 그 순간들, 퇴근 후 맞이하는 CBD의 아름다운 야경, 내 편이 되주지는 않지만 내 적도 아닌 사람들, 내가 열심히 하면 올라갈 곳이 많다는 것이 느껴지는 희망들이 다시 나를 비행기에 오르게 했다.
대학원 진학이 지금 현 상황에서는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줄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처럼 석사 학력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처럼 업계와 직종을 바꾸기 위해서는 강력한 전환점이 필요했다. 기계/제조업에서 IT업계로, 영업관리에서 테크컨설턴트로 큰 도약을 하기 위해서 영국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었다. 영국 내 TOP5안에 드는 비즈니스 스쿨이면 좋겠고, 비즈니스 스쿨 내에 경영과 IT기술이 융합된 학문을 배우고 싶었다. 몇달 간 퇴근 후 SOP를 열심히 써서 지원했었다. 그토록 추웠던 1월 어느 날 저녁, 나는 목표에 부합하는 학교로부터 오퍼를 받을 수 있었다.
두번째, 건강한 루틴을 만들어서 다이어트도 하고 변하는 내 몸 만들기
코로나와 잘못된 식습관때문에 입사 전 몸무게보다 7kg가량이 늘었다. 거울을 보면 배가 나와있고, 몸이 항상 무겁게 느껴지고, 운동은 주말외출할 때 만걸음 걷는게 다였다. 살이 찌니까 자신감도 줄어들고 내 자신이 만족스럽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회사에서 계속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거북목, 골반, 무릎,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몸에서 이상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살들을 빼야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이 들면서 헬스 피티를 등록했다.
다행히 피티샘은 나와 정말 잘 맞는 분이었고, 운동을 같이 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풀렸다. 하루 중 가장 많이 웃고,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운동을 갈까말까 망설이다가 갔다오면 너무 기분이 좋다. 운동을 갔다고해서 후회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시간이 있다면 일단 운동을 해야한다. 퇴사를 앞두고 이제 피티는 4번 남았다. 너무너무 아쉽고 운동을 잘 배웠고 몸의 변화도 눈으로 수치상으로도 다 보여서 뿌듯하다.
아직도 헬린이지만 이제 자세랑 각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고, 부위별로 운동하는 법, 근력운동이 몸의 라인을 만드는데 도움이 크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퇴사하고 나서도 헬스는 꾸준히 해보고 싶다.
무사히 무난하게 3월이 잘 마무리 되기를 바랄 뿐이다. 퇴사통보도 잘하고, 퇴사일자로 잘 조율하고, 아무탈없이 무던하게 퇴사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커리어 노트 📈 > 외국계 영업관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본사 동료 직원의 퇴사 이메일 (0) | 2022.08.30 |
---|---|
청년내일채움공제 2년형 만기 타임라인 (2020년 가입 기준) (0) | 2022.08.29 |
Admin잡/소통전무회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이유 (0) | 2022.08.29 |
나의 Ex상사 이야기 (0) | 2022.08.28 |
5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0) | 2022.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