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2년 7개월동안 외국계 제조업체에서 세일즈 코디네이터로 근무했었다.
포지션의 주업무는 고객 이메일 팔로우업, 세일즈 데이터 취합 및 리포트 생성하기, 다른 나라 지사 사람들과 소통(주로 SCM, Production, Sales)하기 였다.
내가 직접적으로 결정권이 있는 것은 운송비에 마크업하는 것 제외하고는 내 주관이 들어가는 업무는 거의 없었다. 물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매너, 상대방의 이해를 돕기위한 세심한 이메일, 빠르고 정확한 팔로우업 정도는 기본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 소프트 스킬일뿐 (이것도 물론 중요하지만요!) 사내 중요한 의사결정을 위한 참여는 일절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은 시키는 일 잘 처리하고, 내 의견을 낼 기회는 없는 마치 공무원(?)같은 서류작업 이메일 팔로우업이 주였다.
그 흔한 팀 회의조차도 필요없었고, 근무하는 2년 7개월 동안 팀장님과 내 업무 퍼포먼스에 대해 얘기하거나 피드백을 받은 일도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떠났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후회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 많은 돈을 들이고, 학교에서 온갖 수모를 당했어도 작년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2022년 9월 말,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유스퀘어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터져버린 눈물을 도저히 멈출 수 없어서 엄마 손수건을 가지고 버스에 올랐다.
내 꿈, 내가 원하는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족을 떠나 그 멀리로 가야만 한다는 사실에 서러웠었다. 그리고 무한 신뢰로 나를 응원해준 부모님께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10월에 대학원 과정이 시작했고 나는 위기를 직감했고, 나는 발목이 묶여있었던 아기 코끼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난 3년이 가까운 시간동안 나는 한국에서 취준 + 혹독했던 면접(나이를 그렇게 먹고서 자기 회사에 면접 보러온 20대에게 인신공격을 하던 50대 60대 중소기업 사장들) + 2년 6개월 간의 사내 가스라이팅이 나를 옥죄고 있었고, 내 의견을 내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틀 안에서 조용히 대꾸하지 않고 그들의 원하는 것만 해주고, 그들이 듣고 싶은 말만 듣게 해주는 시간들이 내 주관을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3년은 그러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1학기 동안의 팀플은 나는 거의 벙어리였다. 눈치가 보여서, 영어가 완벽하지 못해서, 논리가 안맞을까봐가 아니었다.
그냥 내 생각이 없었다. 아무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애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이야기만 듣고 있었고, 얘네 말이 다 맞겠지라고 생각하고 앉아있었다. 내가 물론 ISFJ로 내향성이 80프로 육박하는 사람이지만, 일과 팀플할 때 만큼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중재하고 의견을 나누던 리더형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성향은 한국 취준+취업 전인 싱가폴 회사에서 재직때까지였다.
한국 사회에 나가니 모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입을 다물기 시작했고, 사회나 조직에서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내 자아를 죽였다.
그래서 팀플하는 동안 나는 아무 생각없이 따라가고 있었고, 급기야 나중에는 내가 파이널라이징하는 단계에서 빠지게 되기도 했다.
이런 내 성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나는 결국 도태될 수 밖에 없고, 졸업 후 취업을 해도 다른 사람들과 프로젝트 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주관이 없는, 죽어있는 일이 하기 싫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영국에서 도태된다면 나는 결국 다시 했던 일로 다시 돌아가야할 것만 같아서 위기감이 엄습해왔다.
2학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한가지 가장 중요한 목표로 ‘팀플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세웠다.
2학기에도 1학기와 마찬가지로 2개 필수과목과 2개 선택과목을 듣게 되었고, 참여해야 하는 팀은 총 3팀이었다.
처음에는 안한지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과목 지식이 많이 없는 상태에서 (사이버 보안, Enterprise Information Systems, Global Sourcing and Cloud 다 처음 배운다.) 내 의견을 말하기는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했던 일이 미팅 전에 미팅에서 나올 법한 말들을 예상해서 준비했었다. 처음에는 준비해갔어도 말 못했던 적도 있었다.
근데 나는 내 큰 장점 중 하나는 감?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하나 나오면 이게 결과가 어떨지 그려지고, 과정이 어떻게 될지, 어떻게 분담이 될지 예상이 바로 된다. 그런데 한 과목에서 아웃소싱을 줘야해서 우리가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야 하는데 팀원 독일여자애가 제시한 아이디어로 애들 여론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당시 누구도 적극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고, 독일 여자애가 말빨이 좋아서 잘 이끌어간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엔 그 아이디어는 정말 별로였다. 미팅이 끝나고 이대로 뒀다가는 저 아이디어로 하겠구나 싶어서 내가 아이디어를 내보았다. 확실한 근거와 받게될 공격에 다 대비해서 준비했다. 전쟁에 나가기 전에 총알을 장전하는 마음으로 준비했었다. 그리고 논리가 통했는지 3대 4로 내 아이디어로 채택되었다.
그 이후에는 내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다는 것이 책임감을 갖게 해주었고, 열심히 피그마로 UX 디자인을 했다. (아직 현재 진행중,,)
나는 이렇게 세 팀에서 모두 적극적으로 내 의견을 피력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날아오는 공격에 쳐낼 수 있는 여유까지 생기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미팅 때 내 말을 할 때면 손이 떨리고 심장이 마구 뛴다..
그래도 1학기 때보다는 훨씬 많이 성장한 내 자신을 보면서 내 또다른 장점이 빠른 적응과 배우는 속도인가 싶다🤓
오늘도 사실 팀플 온라인 회의가 끝난 뒤 눈물을 훔칠 정도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래도 나는 천천히 코끼리에서 사자가 되어가고 있다. 계속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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